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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당 이건 완료, 문화재 님비현상 종결 N

No.1962594
  • 작성자 통합관리자
  • 등록일 : 2009.11.03 00:00
  • 조회수 : 16905

4일 오후 준공식, 전통문화체험 및 교육의 장으로 활용
[2009-11-3]

 

 각종 개발사업과 충돌하면서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현상으로 표류했던 ‘화산서당’ 이전문제가 10여년 만에 완전 종결됐다.

  
영남대 민속원으로 이건 복원된 화산서당


 영남대(총장 이효수)는 경북도문화재 22호인 ‘화산서당’의 이건․복원을 완료해 4일 오후 2시 반 경산캠퍼스 내 민속원에서 준공식을 갖는다. 이날 준공식에는 인동 장씨 화산서당 종회장 장상희 씨와 장영철 영진전문대학총장을 비롯해 종회원 30여명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계서원에 배향된 역동 우탁 선생의 후손인 단양 우씨 문중 대표로 우명규 전 서울시장이 축사를 할 계획이다. 구계서원은 1984년 말 안동댐 수몰지역에서 영남대 민속원으로 이건‧복원됐다.

 
이건하기 전의 화산서당 전경


지난해 12월 화산서당 이건‧복원을 위한 기증협약을 서당 소유주인 인동 장씨 문중과 체결한 영남대는 올해 초 기공식을 갖고 민속원 ‘경주맞배집’ 서편으로 이건‧복원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약 11개월 만에 화산서당의 대문채(20.67㎡)와 강당(76.24㎡)을 준공하게 됐다. 영남대는 화산서당을 전통문화체험 및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화산서당은 조선 효종 21년(1651)에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愚) 선생이 후학 양성을 칠곡군 석적면 중리에 서립한 서당이다. 이후 헌종 6년(1840)에 향촌 사림들이 공론을 모아 칠곡군 석적면 성곡리 화산(花山)에 이건하고 묘우를 신축해 만회당을 배향했다. 그러나 고종 8년(1871)에 내려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강당만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비교적 큰 건물이며,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을 꾸몄는데,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 건축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는 신도심지 조성에 따른 주변지역의 급격한 개발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물 붕괴 등을 이유로 이전이 추진되어 왔으나 몇 차례 무산되면서 방치되다시피 했다. 문화재로부터 반경 500m 이내에는 각종 시설물의 신·개축 및 증축, 용도변경 등의 사소한 행위까지 규제를 받는다는 이유로 이전대상지역민의 극심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인동 장씨 만회당 자손들은 지난 2005년 7월 화산서당 기증의사를 영남대 측에 밝혔으며, 영남대는 현장방문, 법적절차검토 등을 거쳐 화산서당을 경산캠퍼스로 이건‧복원하게 되었다.